[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한국은행이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올해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수출 타격이 2분기부터 본격화되면 지금보다도 경기 하방 압력이 세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다음달 수정 경제전망에서 종전 1.5%로 제시한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같은 달 중순 경제전망을 다시 발표할 예정인데 이달 발간한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한 만큼 종전 전망치인 1.6%보다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해외 주요 기관은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낮춰 잡은 상황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주요 40여개 투자은행(IB) 등 시장 참가자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 중윗값은 1.4%로 한 달 전(1.6%)보다 0.2%포인트 내렸다. 5개월 전인 작년 11월 2.0%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큰 폭의 변화다.
특히 이들 시장 참가자가 제시한 전망치의 하위 25% 값은 이달 기준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그만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0%대 성장 전망을 내놓은 기관도 여럿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관세 확대와 글로벌 경기 둔화가 한국 수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이달에만 1.2%에서 0.9%로, 0.9%에서 0.7%로 두 차례 낮췄다. 리서치 전문기업인 캐피탈 이코노믹스도 0.9%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경제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보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은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까지 둔화되면 경기 하방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영향은 2분기부터 경제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나 오는 24일 발표 예정인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신통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4월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를 통해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은이 분기 성장률 중간 집계 상황을 공개하며 역성장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경기 하강 흐름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밀리 알려 충격을 방지하고 시장과 경제주체의 대비를 유도하려는 차원으로 읽힌다.
시장에서는 한은 등의 새 전망치가 1.0~1.4% 수준에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지만 1.0% 또는 그보다 낮은 0%대로 대폭 수정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12조2000억원대 추경 편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한은이 이번 추경이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이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하는 등 추경의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선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일단 시기와 규모, 예산 배분 면에서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 하강이 가파른 상황에서 추경 편성 시기가 다소 늦었고 경기 둔화와 통상 환경 변화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예산은 4조원 남짓에 불과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추경의 상당 부분이 산불 피해 복구 등 단기 지원과 민생 안정, 인공지능(AI) 장비 확충 등 일회성 대응에 치우쳐 있어 우리 경제의 생산성·경쟁력 등을 높이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중 간 무역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우리 상호관세 협상도 유예 기간인 90일 내에는 어렵고 차기 정부가 들어서야 끝나지 않겠냐”면서 “전반적으로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성장이 종전 전망보다는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대외여건이 상당히 안 좋아지고 있어 수정 경제전망에 대해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며 “트럼프 관세 조치에 대해 대책을 내놓는 게 사실 쉽지 않다. 다만 협상의 여지가 많아 보이기 때문에 통상·외교 역량을 집중해 협상을 잘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469151?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