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기업 ESG 정보공개 의무화’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발표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1월 중 『ESG 정보공개 의무화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ESG 정보공개 의무화 로드맵은 이미 2021년 1월 문재인 정부 당시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바 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기약없이 미뤄 놓았었다.
이번에 발표될 로드맵은 문재인 정부 기존 로드맵의 방향과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 대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2027년 결산 정보를 2028년에 보고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보고 기준은 ‘IFRS ISSB S2’가 될 것으로 보이며, 연례 사업보고서의 첨부자료 형태를 띄게 될 전망이다. 다만 현행 ‘지배구조 보고서’와 유사한 독립 공시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
ESG 공시 의무화...기업 '책임의 시대'로 진입
ESG 정보공개 의무화는 우리 기업들이 '책임의 시대'로 본격 진입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IFRS ISSB S2가 투자자 관점에서의 기후변화 리스크 파악과 대응·적응 방안 중심으로 공시를 요구되고 있어, 다른 환경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폭넓은 정보 공개로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한계와 아쉬움은 크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제는 답답함을 조금 내려놓고, 본격적인 책임의 시대로의 진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SG 정보공개 의무화를 마주한 우리 기업들 역시 경영의 단계를 한 차원 끌어올려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기업 경영의 역사를 돌아보면, 환경과 사회 분야의 법·규제 수준이 사회적 기대와 인식 수준보다 후퇴한 사례는 거의 없다.
물론 트럼프와 같은 이례적인 지도자가 등장할 경우 일시적으로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사회는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SG 공시 보고서, 중요한 만큼 이제 스스로 해야
이러한 시대 변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지속가능성(ESG) 보고서 제작 또한 이제 외부 대행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부 역량으로 수행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에만 나의 역량과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송길영은 그의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개인 역량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그는 AI와 로봇처럼 개인의 역량을 보조하는 수단이 발달할수록, 개인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일의 ‘수준’과 ‘완성도’가 높은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넘쳐나는 유튜브 요리 영상을 보고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AI 번역기를 돌려놓고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AI로 기말 과제를 작성해 제출하고 자신의 학업 성취도가 높다고 믿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무료이면서도 고품질인 정보와 서비스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손과 머리를 써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결국 아무것도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는 지진아가 되고 만다.
스티븐 핑커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 25명이 공동 집필한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2019)』의 저자들 또한 인류가 자본과 기술에 대한 의존을 넘어 중독 상태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자본과 기술에 중독되면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 자체가 훼손되며, 개인과 사회의 가치 판단마저 자본과 기술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기술 발전을 명분으로 환경 파괴를 당연시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요점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의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지고 가치 있게 평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속가능경영(ESG) 실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편의를 이유로 보고서 제작을 계속 대행에 맡긴다면 10년이 지나도 보고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대행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스스로 만든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경영 내재화를 위한 첫걸음
지속가능경영(ESG)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기업과 실무자라면, 지속가능성(ESG) 보고서를 스스로 만드는 일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보고서를 직접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문서 작업을 넘어, 우리 기업의 리스크와 기회, 한계와 과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07년 재직 중이던 기업에서 예산도, 대행사도 없이 혼자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만들면서 이 길에 들어섰고, 그 경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책임의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는 지금, '대행의 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있다. 이제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맡기는 결과물’이 아니라 ‘축적해야 할 역량’이다. 기업과 실무자가 스스로 보고서를 만들 때, 지속가능경영은 비로소 형식이 아닌 실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기업과 실무자 모두에게 가장 현실적이고도 올바른 선택이다.
출처 : 기업이 이젠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직접 써야 하는 이유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ESG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