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ESG 전략 원점서 재검토"
국내 주요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 새판 짜기에 들어갔다. 친환경 및 소액주주 권리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 출범에 따른 것이다. 기업마다 기존 친환경 정책과 밸류업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등 새 정부 정책 기조에 맞게 ESG 전략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 ESG 전략 재정비”
8일 국내에서 유일한 ESG 전문 매거진인 한경ESG에 따르면 산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새 정부 ESG 정책은 ‘탄소중립산업법’이다. 한경ESG는 이재명 정부의 주요 ESG 정책과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집중 분석해 다음달 3일 발간하는 7월호에 담는다.
정부가 새로 만들기로 한 탄소중립산업법에는 산업계의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세제·금융·연구개발(R&D) 인센티브 체계를 정비하는 내용이 들어간다. 전기차, 태양광 업체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유럽연합(EU) 그린딜과 비슷한 정책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선 새 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끌어올리고, 배출권 무상 할당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새 정부는 ESG 관련 공시를 조기 의무화하고 주주가 기업의 탄소중립 전략을 평가하는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기후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주주총회에 보고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세이 온 클라이밋 도입은 사실상 정부가 기업의 탈탄소 이행을 점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연기금과 정책금융기관은 이를 토대로 우수 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할지 결정한다.
관련 정부 조직도 새로 꾸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의 기후·에너지 기능을 통합한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한다. 녹색금융공사도 신설될 가능성이 크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으로 기업들이 통합적인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기업마다 ESG 전략을 다시 짜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도 추진해야
지배구조 개편도 발등의 불이 됐다. 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당은 기존 안건보다 한층 강화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상법 개정을 공언한 데다 여당이 국회를 장악한 만큼 원안대로 통과할 가능성이 큰 편이다.
전문가들은 10년 전 일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설명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4년 자본시장 개혁의 핵심을 지배구조 개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거래소그룹(JPX)은 상장사들이 제출하는 지배구조 보고서에 밸류업 계획을 포함할 것으로 요청했다. 일본공적연금(GPIF)은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경영 참여형 ESG 투자를 확대했다.
정영일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자본시장에서 ESG 정보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신뢰성 있는 ESG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에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장윤제 한국의결권자문 부대표는 “대통령 선거 이후 주식시장이 반등한 이유 중 하나는 새 정부의 ESG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라며 “그런 만큼 새 정부의 ESG 정책을 기업들이 최대한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