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K뷰티 인디브랜드 '묶어 담기'
OEM·ODM, '마케팅 집중' 인디브랜드 성장동력
글로벌 시장 겨냥…성과연동형 M&A로 진화
102억달러(약 14조원).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입니다. 2023년 85억달러보다 20.3% 증가한 것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겼습니다. K뷰티의 인기와 함께 수출 순위도 독일을 제치고 글로벌 3위로 올라섰죠. 이에 따라 국내외 대형 뷰티 기업들이 앞다퉈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 인수합병(M&A)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신진 인디브랜드의 몸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구다이글로벌은 티르티르, 라카, 서린컴퍼니를 한꺼번에 품었고, 로레알은 스타일난다에 이어 닥터지(Dr.G)까지 손에 쥐었죠. 이는 단순한 '브랜드 사냥'을 넘어 포트폴리오의 전략적인 강화라는 평가를 받는데요. 8일 M&A알쓸신잡에선 K뷰티 업계의 최신 M&A트렌드와 전망을 짚어보겠습니다.
'브랜드 컬렉션'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
최근 K뷰티 생태계에선 브랜드 M&A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선 프랑스의 세계 최대 종합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2018년 스타일난다(3CE) 인수로 K뷰티에 첫발을 디딘 로레알은 7년 만에 다시 한국 브랜드에 손을 뻗었습니다. 바로 스킨케어 브랜드 닥터지입니다.
정지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한국 시장을 중국, 혹은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로 여겼다면, 이제는 한국 뷰티 시장 생태계에 대한 글로벌 브랜드의 참여가 더욱 강화되고, K뷰티의 영향력 확대가 기대된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뷰티 트렌드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 소비자의 높은 안목이 제품 품질을 검증하는 시험대 역할을 하면서, 로레알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메이드 인 코리아'에 투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로레알을 꿈꾸는 구다이글로벌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티르티르 지분 50%, 라카 코스메틱스 지분 88%(1년 후 매각)를 인수했고, 올해 서린컴퍼니 지분 100%를 사들였죠. 흥미로운 점은 각 브랜드의 포지셔닝입니다. 같은 뷰티 카테고리지만 겨냥하는 소비자도, 브랜드가 주는 감성도 제각각입니다.
정지윤 연구원은 "단순 브랜드 확보 차원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다수의 브랜드를 묶어 세분된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스킨케어 중심의 브랜드 다변화와 브랜드마다 소비자에게 함의하는 바가 다른 것이 특이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내 뷰티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탄
인디브랜드 인수 행렬은 국내 뷰티 산업 구조의 변화를 시사합니다. 심양규 삼일PwC 파트너는 한국 화장품 산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기획·개발 ▲원료·부자재 ▲제품·생산 ▲유통·판매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구조에서,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같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제조사가 글로벌 수준의 생산 기술과 유연한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며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것입니다.
심양규 파트너는 "OEM·ODM 비즈니스의 성장은 인디브랜드의 확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숏폼 콘텐츠 기반의 마케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브랜드는 자체 생산 설비 없이도 유연한 제품 출시가 가능한 OEM·ODM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브랜드가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유통망, 대규모 마케팅 자금, 신제품 개발 역량 등이 필요한데, 소규모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M&A의 필요성은 여기서 생깁니다. 인디브랜드는 대기업의 자본과 인프라를 얻고, 인수자는 검증된 브랜드 자산과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는 윈윈(win win) 구조라는 것이죠.
'언아웃' 조항으로 본 거래 구조의 진화
거래 구조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대기업이 일부 지분만 선투자하고 향후 성과에 따라 잔여 지분을 단계적으로 취득하는 '성과 연동형 M&A'의 증가입니다. 당장 지분 100% 또는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주면, 자칫 브랜드 고유의 감성과 창의성이 희석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인디브랜드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구조는 인수자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고, 피인수자 입장에서는 브랜드 가치 상승에 따른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어 합리적입니다. 무엇보다 브랜드 창립자가 일정 기간 경영에 계속 참여하도록 유도해,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효과가 크죠. 정지윤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투자방식이 일례"라며 "그만큼 인디브랜드는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됩니다. 지난 6월 미국의 엘프 뷰티(Elf Beauty)가 슈퍼모델 헤일리 비버가 설립한 '로드(Rhode)' 브랜드를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 중 8억달러는 계약 선불금, 추후 지급될 언아웃(계약 이후 미래에 발생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조항) 합의금액 2억달러로 구성됐죠. 이 조항은 향후 3년 동안 브랜드가 당초 기대한 매출 성장을 달성했을 경우 이행됩니다.
결국 최근 K뷰티 M&A의 핵심은 '글로벌 확장성'입니다. 한국 시장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자 피드백이 빠르며,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뷰티 실험실'로 자리 잡았죠. 심양규 파트너는 "올리브영을 중심으로 한 국내 H&B(헬스앤뷰티) 채널 재편과 실리콘투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K뷰티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주도하고 있다"며 "K뷰티 밸류체인은 화장품 산업을 기반으로 제조·브랜드·유통 각 부문의 경쟁력이 인접 영역과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며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각 부문의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밸류체인 간 전략적 결합을 중심으로 활발한 M&A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습니다.